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명언
- 연예 스포츠
- 2020. 2. 5. 12:48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명언
"곰팡이가 핀 빵에서 페니실린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당신안에서도 무엇인가가 만들어질 수 있다."
너무도 멋진말. 무하마드 알리는 현역시절 떠벌이라고도 불렸지만, 링위의 음유시인이라고도 불렸는데요.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Impossible is nothing' 이 말도 알리가 가장 처음 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죠.
알리가 어렸을때(1942년생)까지만 해도 인종 차별이 심했던 때였습니다. 흑인은 당연히 가난했고, 일정한 고정 수입이 없었으며, 교육 여건이 확보되지 못했던 때였죠. 자신의 어린시절이 위의 어록에서 나오는 '곰팡이가 핀 빵'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 알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고민 하던 중 탈출구로 발견한 것이 바로 복싱인데요. 미국을 대표해서 금메달을 따면, 위대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고, 훈련에 매진하여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땁니다. 집과 고향은 (당연히 흑인들만) 축제 분위기였고 위대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던 알리지만, 흑인 금지 식당에는 여전히 들어가지 못했고, 오히려 '검둥이'라고 욕을 먹고 쫓겨나야 했죠. 자신은 여전히 페니실린이 아닌, 곰팡이가 핀 빵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식당에서 쫓겨난 날 바로 금메달을 동네 호수에 버렸습니다.
그 후 알리는 프로 선수로 전향을 합니다. 1964년에는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게 되죠. 이 때 이름도 우리가 아는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을 합니다. 그 당시 미국은 스포츠 스타들에게 참전을 권하는데요. 알리는 베트남전 참전을 거절합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나를 흑인이라고 욕한적도 없고, 나한테 피해준적도 없다. 왜 내가 나를 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사람들을 죽여야하나?'라고 얘기하면서 참전을 거부하죠. 알리는 이 때에도 인종차별이라는 세상과의 전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행한것인데요. 징병거부의 댓가는 참혹했습니다. 세계챔피언 자리를 박탈당하고, 3년간 권투선수 자격을 정지 당합니다. 최고의 전성기와 운동신경이 가장 좋을 나에에 이와 같은 대우를 받은 알리지만 다행히도 1971년 대법원에서 선수자격정지가 해제가 됩니다. 3년 이상을 쉬었던 알리는 어느덧 30줄에 접어들고, 한물간 선수라고 불리게 되지만, 그당시 핵주먹이라고 부리던 조지포먼을 이기고 다시 챔피언에 오르게 되죠.
알리는 이런 말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위대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두 배 이상 위대한 사람이다.' 대단하면서도 유쾌한 자신감이죠^^? 사람들이 떠벌이 알리를 싫어하지 않는 이유는 알리가 겪어온 삶이 그랬기에 존경받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복서 은퇴후 후유증으로 파킨슨 병을 앓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 인권운동과 피킨슨 병 퇴치 사회활동을 죽기전까지 평치고 투병중에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마지막 성화주자로 성화를 옮기던 알리. 그는 2016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곰팡이가 핀 빵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알리는 결국에 페니실린 같은 위대한 인물이 되었고, 감동과 감명을 남기고 떠났는데요. 알리의 메세지는 내가 그랬듯, 곰팡이가 핀 빵에서 페니실린이 나오듯, 당신도 그렇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소중이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명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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